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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닌 다른 삶

pdhgdty 2024. 2. 13. 13:34


파리 16구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라고 파리 정치 대학을 나온 작가 이력에서도 전해지듯이 카레르의 소설들에서 나는 자의식 강한 엘리트 성향을 자주 느낀다. 그의 여러 작품을 읽다 보니 현실과 픽션이 맞물린 분석적인 그의 작품 특징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을 보고 있으면 신변잡기적인 온갖 고민, 글이 써지지 않아 애를 먹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그것들이 소설과 어울려 펼쳐지는 게 흥미롭다. 그래서 현재 소설에 이전 소설들과 등장인물들이 출현하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이 소설만 해도 카레르와 엘렌이 결혼 파경 직전인 상태에서 가족 휴가로 간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들은 스리랑카에서 지진 해일 참사를 목도하고 서로 헤어지지 않기로 결심한다. 피해자 중 4살짜리 딸 쥘리에트를 잃은 델핀-제롬 부부의 일을 곁에서 도왔던 그들은 귀국한 뒤 엘렌의 여동생 쥘리에트의 시한부 소식을 듣게 된다. 잘 알지 못했던 두 명의 쥘리에트와 그들의 죽음을 연결해 다듬은 카레르의 이 소설은 그의 여느 소설보다 훨씬 타인에게 깊이 다가가 있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모습이라 감동적이다.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자발적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썼다. 부모가 겪는 자식의 죽음,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이 겪는 젊은 엄마이자 아내의 죽음에 대해. 삶은 나를 연이어 일어난 이 두 불행의 목격자로 삼았고, 내게 그것을 알릴 책임을 지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삶은 나에게 그것들을 면하게 해주었다. 앞으로도 그래 달라고 나는 기도한다. 행복은 과거형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때는 몰랐는데, 행복했구나, 하고 깨닫는다고. 내게는 적용할 수 없는 얘기다. 나는 오랫동안 불행했고, 불행을 생생히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이 나는 좋다.”“상조 회사나 은행 대출 광고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곳의 삶이었다. 비과세 자유 적금 금리, B 지역 학교들의 방학 날짜가 관심사인 삶, 오샹 마트가 소비 생활의 중심인 삶, 운동복을 평상복 삼아 입는 삶, 모든 면에서 그저 중간인 삶, 개성이라고는 없는, 아니, 삶을 멋스럽고 개성 있게 만들려는 의식조차 없는 삶이었다. 나는 이런 삶을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원하지 않는 삶이었다. 그러나 그날, 아이들과,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아이들을 찍는 부모들을 보면서, 로지에의 삶이 단순히 안전함에 대한 바람과 군중 심리 때문에 선택한 삶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선택한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비극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 그 속에서 더욱 빛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지진 해일로 숨진 세 살 소녀 쥘리에트와 서른셋에 암으로 숨진 여판사 쥘리에트. 작가는 실제로 목격했던 두 쥘리에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질병과 가난, 사별의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 이웃들의 평범하면서도 다른 삶들, 그로 인해 변화된 작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