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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도시로 보는 미국사’라고는 했지만, 정확히는 미국 ‘도시사(史)’다. 그리고 그 도시사도 미국의 모든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여덟 개의 도시를 대상으로 한다. 물론 그 여덟 개의 도시는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이고, 도시의 역사를 통해서 미국이 어떻게 성장해 왔고, 어떤 모순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니 ‘미국사’라고 붙인 제목이 아주 과장된 것만은 아니긴 하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덟 개의 도시는 다음과 같다. 미국 독립 당시 수도 역할을 했던 필라델피아, 흑인 대이동의 목적지가 되었던 시카고, 자연의 혜택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면서 다인종 사회를 형성한 로스엔젤레스, 독립 전쟁 이후 다시 남부의 중심이 된 애틀랜타, 도심지 재개발의 악몽을 경험한 세인트루이스, 흑인들이 자신들만의 도시를 세우겠다면 18개월 동안 점거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섬 앨커트레즈, 기념과 기억의 공간이 된 워싱턴 DC, 언제나 미국의 중심이었던 뉴욕. 앨커드레즈 섬을 도시라고 볼 수는 없으니 여덟 개의 도시라는 표현은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으나 여하튼 이 여덟 도시, 혹은 공간을 통해서 미국이라는 사회가 어떤 문제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왔거나, 혹은 모순을 증폭시켜왔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본 도시는 시카고,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DC, 이렇게 네 곳이다.) 책에서 중심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저자의 전공이 그렇듯 도심과 교외 개발과 관련 있는 주택 정책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고, 그것과 관련해서 도시에서 인종과 계급 간의 모순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극명한 예는 1969년 흑인들의 앨커트레즈 섬 점거인데, 사실 나는 이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를 여러 차례 갔어도, 그 때마다 Fisherman’s warf에서 그 섬을 봤어도, 그리고 한번은 그 곁을 스쳐 갔어도 그런 역사는 몰랐었다. 또한 각 도시마다 흑인, 혹은 라틴계의 저항이 있었다는 것도 구체적으로 알고 있던 얘기가 아니다. 최근에 벌어진, 이른바 ‘폭동’이라고 명명된 몇몇 사건들은 알고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의 도시들은 그런 문제를 겪어 왔으며, 그 해결책으로 인종분리라는 치사한 정책을 세우고 있음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TV 프로그램 <알쓴신잡>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이 용어, 혹은 현상(놀라운 일이었다. TV 예능에서 이 얘기를 심각하게 다루다니)에 대해 뉴욕에서의 예를 통해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1964년에야 등장한 용어다.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Ruth Glass)가 ‘런던 시내에서 노동자 계급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유입하면서 기존 거주자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보고서 붙인 용어다. 젠트리, 즉 토지 귀족들의 사유지 확장 운동에 빗댄 용어다. 저자가 기록한 뉴욕에서 벌어진, 그리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읽으면서 (다른 도시 이야기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의 도시 이야기가 우리의 도시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규모와 그 양상이 조금 다를 지라도 그들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그대로 우리의 도시에서도 벌어지고, 그 모순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현상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비주류 문화를 가장 급진적이고 위험한 요소는 제거한 상태로 주류 문화에 수용’되어 버리는 이 막강한 자본의 힘이다. 유시민과 다른 이들도 <알쓴신잡>에서 그랬다. 몇 가지 대안을 얘기했지만 결국은 별 수 없다는 거였다. 이 책에서도 이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 대부분은 도시에서 살아간다. 도시는 창의성의 공간이다(많이 모일수록 효율성은 증가하며 형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창조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분명한 연구 결과다). 그러나 그 도시가 악몽일 때가 많다. 악몽이 되지 않는 도시. 그걸 우리는 꿈꾼다. 어떻게 하면 될까? 미국의 도시 이야기를 읽으며 어쩔 수 없이 자꾸 내가 사는 이 나라의 도시를 생각했다.
도시, 미국을 만들다
여덟 개의 도시로 지은 미국 역사의 빛과 그늘

이 책은 도시라는 창으로 본 미국사이다. 즉 미국 주요 도시의 역사를 통해 현대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필라델피아를 통해 세기말의 변화와 새로운 사회 문제를, 시카고를 통해 흑인 유입 문제를, 로스앤젤레스를 통해 아시아 이민과 도시 공간의 변화를, 애틀랜타를 통해 미국 남부의 발전과 흑백 갈등 및 분리 문제를, 세인트루이스를 통해 도시 문제와 도시 재생의 역사를, 앨카트래즈 섬을 통해 미국 원주민의 공간을, 워싱턴 DC를 통해 도시 계획과 기념 공간 조성을, 뉴욕을 통해 세계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서의 대도시 현황을 보여준다. 19세기 후반 이후 100여 년 동안 이 도시들이 국가 정체성 형성, 도시 정비와 재정비, 이주와 이민 문제, 경제 발전과 국토 개발, 인종·계급 갈등의 구조화, 도심 및 교외의 형성과 재개발 등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책이 그려내는 도시는 혁신과 투쟁의 공간이다. 도시는 시간과 더불어 끊임없이 변화하며, 미국의 역사는 도시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미국의 도시는 미국의 변화를 주도하고, 미국의 중요한 문제들에 해결 방식을 제시하며, 주변 지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도시가 어떤 역사를 거쳐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각 도시의 역사와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통해 미국사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덟 도시는 도시 형성 시기나 발전 시기 등이 조금씩 다른 만큼, 각기 다른 시기의 각기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이 도시들은 미국 역사의 시기별 이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들로, 각 도시의 특성과 미국 국가사의 전개 과정을 동시에 펼쳐 보인다. 지역성과 전체 국가의 발전 과정을 동시에 살펴보는 이 책의 방식은, 광활한 영토와 지역별 차이로 인해 국가사 구성이 쉽지 않은 미국사 서술에 유효한 접근법이다. 또한 생동하는 혁신과 투쟁의 공간으로서의 도시에 대한 탐구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생생한 역사 읽기의 체험을 선사한다. 도시가 미국사를 바라보는 창이듯, 미국 도시사는 한국 사회와 한국 도시를 이해하는 유용한 창이 되어줄 것이다.


들어가며 : 미국 도시로의 초대

제1장 필라델피아 ― 독립 100주년과 새로운 세기
1. 필라델피아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2. 100주년 박람회
3. 박람회의 그림자
4. 박람회로부터 계획도시로

제2장 시카고 ― 흑인 대이동과 갈등
1. 시카고 발전사
2. 흑인 대이동 - 희망과 절망
3. 분리된 도시의 비애 - ‘정글’ 속 흑인
4. 그 여름, 뜨거웠던 시카고

제3장 로스앤젤레스 ― 자연의 정복과 다인종 사회
1. 사막의 낙원
2. 자동차 도시
3. 로스앤젤레스의 아시아계 이민
4. 재개발과 인종

제4장 애틀랜타 ― 백인의 도시 탈출과 쇼핑몰 교외
1. ‘미워할 짬이 없는 도시’의 민낯
2. 팽창과 분리
3. 새로운 도시, 쇼핑몰 교외
4. 남부 도시의 보수화

제5장 세인트루이스 ― 도심지 재개발의 악몽
1. 재개발 - 공동화의 대안
2. 프루잇-아이고의 짧은 일생
3. 하지 못한 이야기
4. 가지 못한 길

제6장 앨커트래즈 ― 그들만의 나라
1. 그날 앨커트래즈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2. 제거와 보호의 역사
3. 18개월의 해방구, 그 이후
4. 앨커트래즈는 지금

제7장 워싱턴 DC ― 기념 공간의 형성
1. 링컨 기념관에 선 두 흑인
2. 워싱턴의 건설
3. 국가적 기억과 기념의 공간
4. 추모의 공간으로

제8장 뉴욕 ― 젠트리피케이션의 최전선
1. 대도시의 운명
2. 젠트리피케이션과 로어이스트사이드 스토리
3. 임차 주민의 운명
4.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책을 마치며 : 도시의 미래 - 젠트리피케이션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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