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2
# 작가의 다른 작품 돈목로주점인간짐승나나(..)# 읽고 나서. 빵을 달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까만 재를 뒤집어쓰고 땅속 깊은 곳에서 석탄을 캐는 사람들. 작은 빵 쪼가리 하나 싸와 옷 사이 어딘가에 끼워 넣고 이른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들. 그렇게 일해도 식구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거대 자본주의와, 거기에 맞서려는 노동자 조합의 이야기, 배경인 탄광촌 만큼이나 앞이 깜깜한 이야기, 정말 고구마 백만 개는 먹은 느낌. 그들의 삶이 어찌나 우울한지 그 우울이 나에게까지 전염되었나 보다. 외지인인 에티엔은 술 마시고 윗사람을 때리고 직업을 잃는다. 떠돌다 들어온 탄광촌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웃댄다. 운 좋게 한자리 얻은 그는 열심히 일해 능력을 인정받으며 자리를 잡는다. 같이 하숙하던 전기공의 책을 뒤적이며 노동, 인권에 대한 사상들을 겉 핥기 식으로 공부하며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싶어 한다. 거대자본이 투입된 탄광촌에서 조금이나마 이윤을 남기기 위해 치사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갈취하려고 하자 작업반장 마외는 절망한다. 그 옆에서 에티엔은 파업을 종용하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그를 따라 긴 파업에 돌입한다. 집에 있는 살림살이를 다 팔았음에도 빵 쪼가리 하나 남지 않은 마외네 가족들과 사람들은 협상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노하고, 분노한 그들은 광란의 행진을 계속하며 배신자들을 찾으러 다닌다. 결국 그들은 실패하고, 사람들이 죽는다. 에티엔은 딱히 잃을 것 없는 혼자 몸이었지만 마외의 가족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실패 후 갱이 다시 문을 열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러 나간다. 떠나려고 했던 에티엔은 사랑 때문에 남기로 결심하지만, 그건 또 다른 절망을 불러오고 만다. 어설픈 지식과 공명심으로 손쉽게 우두머리가 되자 에티엔은 처음에 우쭐한다. 그가 주도한 파업이 결국 실패로 끝나고 외면받자 괴로워하지만, 결국 무지한 그들과 나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린 유토피아는 눈앞에 쉽게 잡힐 것 같았지만 그냥 꿈으로 끝나버렸다. 제르미날은, 파종의 달, 싹트는 달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비극적인 사건 이후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다. 에티엔은 마을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모든 사건이 에티엔의 성장 을 위한 수업일 뿐이었나 싶을 정도로, 딱히 변한 게 없어 보이고,, 그냥 코딱지만큼의 희망을 주고 끝맺어 버린다. 힘 있는 자들의 만행, 열악한 노동환경, 부익부 빈익빈.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그 코딱지만 한 희망은 어디로 가버렸나 싶다. 빵을 달라던 사람들의 외침이, 그 절망적인 상황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 우울함도 참 오래갈 것 같다.*1권 밑줄"고기 구경한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납니다.""빵이라도 매일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맞습니다. 빵이라도 매일 먹을 수만 있다면 뭘 더 바라겠습니까!"결코 달래지지 않는 허기를 드러내며, 세상 사람들 모두를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한 창자를 끊임없이 꿈틀대면서. 갱도는 인간 가축들로 채워지고 또 채워졌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서는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으며, 케이지는 여전히 탐욕스러운 침묵 속에서 허공을 뚫고 또다시 위로 솟구쳤다."언제쯤 끼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이 지랄맞은 팔자!" 라 마외드는 또 중얼거렸다.이렇게 비참한 삶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고된 노동 끝에 파김치가 된 아직 어린 여자들이 저녁이면 또다시 끝없는 노동과 고통에 시달릴 생명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녀들이 항상 굶주림으로 고통받을 생명들로 자신을 채워간다면 이런 악순환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술, 여자, 그런 거 다 필요 없다고. 내 피를 끓어오르게 할 수 있는 건 딱 한가지뿐이야. 그건, 이 땅에서 부르주아들을 몽땅 쓸어버리는 거야."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요!" 청년이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선한 신과 신의 천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 스스로가 이 땅에서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거죠?"두 사람은 빈곤한 삶의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막상 행동해야 할 순간이 되자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대대로 내려오는 노동자의 체념 속으로 빠져들며 또다시 허리를 굽히고자 했다."어쨌거나 여기 숨어 있는 건 잘하는 거다. 네 아버지가 네가 도둑질한다는 걸 알았다간 넌 뼈도 못 추릴 테니까.""마치 부르주아들은 우리한테서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않는 것처럼 말하네요! 맨날 그런 말을 한 건 바로 당신이잖아요. 네가 메그라의 가게에서 이 빵을 가져온 건 사실이지만, 난 그 사람이 우리한테 빚진 빵을 받아온 것뿐이라고요."*2권 밑줄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한 여자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맹세를 별로 믿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게 구는 그를 보면서 마냥 기뻐했다. 부디 앞으로도 내내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파국이 확실시되자 몽수의 불한당들을 향한 증오심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공범자들로서, 대를 이어 전해내려오는 만인의 죄를 속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은 짐승처럼 거친 야만인들이었다. 하지만 배우지 못하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야만인들이었다. 그가 말한 것들, 군인 같은 복종심과 위험의 한가운데서 발휘되는 동지애와 체념은 그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맙소사, 저들이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 건가! 저런 도적떼 같은 무리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과연 분노와 굶주림, 그리고 두 달간 이어진 고통 속에 무리 지어 갱들을 휩쓸고 다니는 동안 몽수 광부들의 온순했던 얼굴은 야수처럼 사납게 변해 있었다.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어리석은 인간들!" 엔보 씨는 거듭 중얼거렸다. "난 행복한 줄 아나보지?" "빵을 달라고!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줄 아나보지,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하지만 참 이상하네요. 저 사람들은 절대로 나쁜 사람들이 아니거든요."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한결같은 완벽한 어둠이 지배하는 끝없는 밤이었다. 아무리 안전한 곳에서 잠자고 배부릴 빵을 먹고 따뜻하게 지내도 그 고통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어둠이 그토록 무겁게 머릿속을 짓누른 적은 없었다. 어둠이 곧 짓눌린 채 고통받는 그의 생각 자체인 듯했다. 에티엔은 자신들의 불행이 저들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거대 자본의 무소불위의 힘 앞에 또다시 절망을 느꼈다. 저들은 약한 이들의 패배를 이용해, 지쳐 쓰러진 이들의 주검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나갔다. 학습을 통해 세련되고 야망을 키워온 그는 신분 상승을 이룬 노동자로서 그들과 거리감을 느꼈다. 이토록 처참한 삶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 퀴퀴한 냄새 속에서 가축처럼 한데 뒤엉켜 잠을 자는 삶이라니! 그는 그들을 향한 절망적인 연민에 목이 메어왔다. 마지막 단말마의 광경을 지켜보면서 깊은 절망에 빠진 그는 그들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충고하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찾고 있었다. 평소에는 부자들에게 반기를 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 같아도, 막상 자신에게 뜻하지 않은 재물이 생기면 그걸 가난한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요기가 없다는 말이지....당신네들이 자기만의 재물을 소유하려 하거나, 부르주아를 향한 반감이 단지 그들 대신 부르주아가 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거라면, 당신들은 절대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거야. 죽일 용기가 없다면 자신이 죽는 길밖에는 없었다. 예전에도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에게 남은 취후의 희망처럼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혁명을 위해 용감하게 죽을 수 있다면 모든 걸 끝낼 수 있을 것이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어떻게든 결말이 날 터였다. 그러면 그로서도 더 이상 힘들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이 징글징글한 삶은 어째서 곧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이제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뭐든지 잘 될 거라고, 조금만 애쓰면 다 잘 될 거라는 허황된 말로 우리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약은 작자들이 더디든 있기 마련인 거야...그러면 사람들은 흥분하면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로 인해 고통받다 못해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을 바라게 되지. 나 또한 어리석게도 허튼 꿈을 꿨던 거야. 온 세상 사람들과 서로 도와가며 잘살 수 있는 삶을 꿈꿨지. 그래! 잠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녔던 거야. 그러다 된통 당하고는 다시 똥통 속으로 떨어진 거지...그러니까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어. 저 위에는 우리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도 없었던 거야.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여전히 진저리 나는 곤궁한 삶이었어! 그래! 우린 주체하지 못할 넘치는 가난으로도 모자라 총알 세례까지 받은 거라고!"반항적인 노동자와 회의적인 우두머리는 그들에게 내재해 있던 인간애에서 비롯된 극심한 마음의 동요 속에 서로를 얼싸안고 큰 소리로 흐느끼며 굵은 눈물 줄기를 쏟아냈다. 그들은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삶의 곤궁함과,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크나큰 고통 앞에서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
자연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122번으로 출간되었다. 이로써 문학동네는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인 테레즈 라캥 (박찬욱 감독의 영화 의 모티프)과 루공마카르 총서에 들어 있는 졸라의 4대 대표작 목로주점 인간 짐승 나나 제르미날 을 모두 출간하게 되었다. 목로주점 의 세탁부 제르베즈의 아들과 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졸라의 4대 대표작 중에서도 특히 제르미날 은 에밀 졸라 문학의 최정점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목로주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전진하는 진실 등 에밀 졸라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해온 전문번역가 박명숙이 번역했다.
제5부
제6부
제7부
몽수와 그 주변 지도
해설 | 제르미날 , 짙은 어둠 속에서 움트는 희망의 대서사시
루공마카르 가문의 계통수
에밀 졸라 연보